맥베스(Macbeth)
"인디언들의 속담중에 '마음의 삼각형'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삼각형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나쁜일을 저지를 때마다 삼각형 모서리가 양심을 찔러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삼각형도 엄청나게 단단한 것이 아니라서 나쁜일은 많이 저지르면 그 끝이 닳아, 결국 양심의 가책마저도 못느끼게 된다."
맥베스는 소설이 아니라 '극', 희곡이며 널리 알려졌듯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작품이다. 어렸을적부터 4대 비극이라는 말을 엄청 많이 들어왔지만, 그 중 하나라도 제대로 본 일이 없기때문에, 책을 고를 때 무심코 소설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책을 펼치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대사들 때문에 조금 당황하게 되었다. 또한 셰익스피어 특유의 은유적인 문체도 책을 덮을까 고민하는데에 한 몫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맥베스는 내용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고, 생각보다 두께가 얇아서 끝까지 읽어보기로 했다.
책은 전쟁에서 귀환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맥베스는 전쟁터에서 동료와 돌아오던 중, 자신이 영주가 되며, 이후에 왕위에 오른다는 마녀들의 예언을 듣는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마녀들이 사라진 직후 반란의 진압 소식을 듣고, 자신이 영주가 되므로써 확신이 생긴다. 그리고 덩컨왕이 자신의 영지를 방문하는데, 아내의 부추김에 결국 암살을 통해 왕이된다.
이렇게 얻은 왕의 자리는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마녀들의 또 다른 예언인 '친구 뱅코가 모든 왕들의 조상이 된다, 또한 맥더프가 위험한 인물이다'라는 말에 대규모 숙청을 감행하여 자신의 왕좌를 지키려고한다. 그 사이 맥베스는 양심과 권력의 사이에서 끝임없이 갈등하며, 결국에는 자신이 죽인 이들의 환영까지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암살을 부추겼던 맥베스의 부인도 몽유병으로 피묻은 손을 계속해서 씻다가 미쳐서 죽어버린다.
그러나 맥베스가 그나마 믿고 있었던 것은 마녀들의 또 다른 예언이었는데, '버남의 숲이 던시네인을 넘어오기 전까지 죽지 않을것',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에게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숲으로 변장한 병사들이 던시네인을 공격해오고, 10달이 차기 전에 어미의 배를 갈라 태어난 아이였던 맥더프에게 죽임을 당하며 비극은 막을 내린다.
맥베스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한 인간이 서서히 타락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 것같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왜 타락하게 되었는지 인데, 흔히 알고 있듯이 마녀들의 예언이 가장 큰 원인이다. 마녀들은 맥베스를 처음 만나면서 맥베스에 대한 3가지 언급을 했다.
1) 글라미스의 영주이다
2) 코도의 영주이다
3) 왕이될 자이다.
마녀를 만났을 당시 글라미스의 영주였으므로 1번은 현재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 다음으로 가장 치명적으로 작용했던 예언이 2번이 아닌가한다. 마녀들이 사라지고 반란이 진압되면서 전령에게 자신이 코도의 영주가 된 것을 듣게 된다. 맥베스는 이로 인해 마녀들의 예언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결국 3번 내용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면서 암살까지 감행하게 된다.
마녀들이 한 말들이 정말 운명의 책에 기록된 내용이라서 그대로 이루어 질수도 있었지만,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맥베스의 운명은 바뀌었을까? 그에 대한 진실은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 마녀들의 예언은 흔히 사기꾼들의 수법과 비슷하다. 이 예언을 우리나라 중고 거래 역사상 가장 큰 사기 사건인 SK 상품권 사건과 비교해보자. 피의자 부부는 자그마치 1년동안 SK상품권을 손해보면서 저가에 팔며 구매자들에게 신용을 쌓았다. 그러나 이렇게 쌓인 신용은 마지막 거래에서 무너지게 되는데, 상품권의 값으로 선불 지급된 28억원의 돈을 가지고 도주한 것이다.
중세시대에 마녀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요새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신비하고 영적인 존재의 이미지보다는 인간세계에 혼란을 주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맥베스의 마녀들은 운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기꾼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타락으로 돌아가서, 맥베스가 왜 비극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볼 때는 단순히 권력에 미친 한 남자가 왕위에 오르고, 이를 지키기 위해 피투성이의 길을 걷다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내용이다. 주인공 관점에서 엔딩은 죽는것이므로 비극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는 조금 모자라다. 나는 죽음보다는 타락의 과정과, 양심과 비양심의 경계에서 끝임없이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비극이 아닌가 한다.
비극의 가장 큰 모습은 극의 마지막이 아닌 처음에 있다. 아직 미쳐버리기 전에 맥베스는 부인의 말에 갈등하고, 또 암살을 실행하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런데 왜 나는 '아멘'하지 못했을까? 축복을 절실히 원했는데 '아멘'이 목구멍에 걸렸소"
"내 생각에 외치는것 같았소, '못 자리라! 맥베스는 잠을 죽여버렸다'고"
비록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후 가신들 마저 숙청의 길로 내몰았던 폭군이었지만, 그도 자신이 저지른 악행의 조각들이 양심을 찌르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운명의 굴레가 점점 더 목을 조이고 양심의 고통이 맥베스를 미치게한다. 이 때문에 모든것을 잃고 죽음에까지 다다르는 과정을 통해 비극은 더욱 증폭된다.
여담으로 맥베스 이야기를 하다보니 "블리자드 타락 신드롬"과 비슷한 점이 몇몇 보이기도 한다.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로 대표되는 블리자드 게임에서는 툭하면 타락 클리셰가 등장한다. 워낙 자주 우려먹는 클리셰이기 때문에 신 캐릭터가 나온다면 "저놈도 타락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부터 든다. 쉽게 말하면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타락하는 과정을 잘 담아내고 스토리면에서 탄탄한것이 아서스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너무 길어지므로 이 이야기는 여담으로 마친다.
워낙 유명한 맥베스이니 만큼 연극이나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많이 본건 아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것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7년작 "거미의 성"이다. 맥베스의 이야기를 일본 시대극으로 옮겨서 표현한 것이 신선했다. 기존 이야기에서 마녀들은 물레를 돌리는 노파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데, 실이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며, 이를 돌린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의 느낌을 주게 된다.
이 영화의 압권은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이 적군에게 포위되자, 아군마저도 주인공에게 화살을 쏘게 된다. 여기서 죽음을 공포에 둔 표정 연기가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7인의 사무라이'등에서 연기한 미후네 도시로가 맡았는데, 이 장면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일일히 위치와 동선을 자세히 설명하자 도시로가 그 이유를 물었는데 화살을 직접 쏠거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러고 압축 공기 등을 사용해 사전에 공지도 안하고 화살을 쏜 덕분에 저렇게 리얼한 표정이 나올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날 밤 술에 잔뜩 취한 도시로가 감독을 엽총으로 쏴죽이겠다고 들이닥치긴 했으나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었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라고 생각해서 맥베스를 읽게 되었다. 문체가 좀 복잡하고 어려운건 있었지만 다 읽고 나니 다른 비극과 희극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넉넉 잡아 한 1년안에 다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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